“‘슬롭’이 전문 용어가 되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보는 중. ‘스팸’이 원치 않는 이메일을 뜻하게 된 것처럼, ‘슬롭’은 원치 않는 AI 생성 콘텐츠를 뜻하는 말로 사전에 오를 것이다.”
— 2024년 5월 7일, X 유저 @deepfates

“slop: 인공지능을 수단으로, 대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저품질 디지털 콘텐츠”
— 2025년 12월 15일, 메리엄-웹스터 사전

1. 개요

AI가 대량으로 찍어낸 저품질 콘텐츠를 가리키는 말.

2025년 메리엄-웹스터와 미국방언학회가 나란히 올해의 단어로 뽑았고, 호주 맥쿼리 사전은 ‘AI slop’으로 위원회 선정과 대중 투표를 동시에 석권했다. 서로 다른 기관이 한 해에 같은 단어를 고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1]

흔히 “AI 시대의 신조어”로 소개되는데, 반은 틀렸다. slop은 15세기부터 있던 단어고 “저질 글”이라는 뜻으로 쓰인 기록도 최소 1897년까지 올라간다. 새로 생긴 게 아니라 죽어 있던 뜻이 되살아난 것에 가깝다.

메리엄-웹스터 콜리지에이트 사전
이 사전이 2025년에 slop을 뽑았다. / 사진: Noah1806,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2. 유래

2.1. 원래 뜻은 돼지 먹이

메리엄-웹스터에 따르면 명사 slop의 최초 사용은 15세기. 어원은 “of uncertain origin”으로 처리된다. 중세영어 sloppes를 거쳐 고대영어 -sloppe로 소급하는데, 이 고대영어 형태는 “똥”을 뜻한 것으로 추정된다.[2]

뜻이 굴러온 경로가 이렇다. 무른 진흙(15세기) → 묽고 맛없는 음식(1650년경) → 음식물 쓰레기, 가축 사료(1800년대) → 말과 글에서의 감상적 넘침 → AI 생성 쓰레기(2020년대).

참고로 “선원용 헐렁한 작업복”을 뜻하는 slop도 있는데 어원이 완전히 다른 동음이의어다. 아무 상관 없다.

2.2. AI 나오기 100년 전부터 “저질 글”이었다

국내 소개 기사에서 통째로 빠지는 대목. 펜실베이니아대 언어학 블로그 Language Log가 파낸 용례를 보면 이미 19세기부터 slop은 인간이 읽는 저질 읽을거리를 뜻했다.

When we over here are not reading slop we read the books that bear the approval of London.
(우리가 여기서 슬롭을 읽고 있지 않을 때는 런던의 승인을 받은 책을 읽는다.)

1897년, 어느 서평

I read all kinds of printed junk / the good, the noble and the punk…and men who see me reading slop.
(나는 온갖 인쇄된 쓰레기를 읽는다 / 좋은 것, 고귀한 것, 형편없는 것… 그리고 내가 슬롭 읽는 걸 보는 사람들.)

1920년, Farm Journal

Language Log는 돼지 사료 → 인간이 소비하는 저질 콘텐츠라는 비유가 역사상 여러 번 독립적으로 일어났을 거라고 본다. 사람들이 형편없는 콘텐츠를 보면 자꾸 돼지 여물통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메리엄-웹스터가 이 단어를 고른 이유 중 하나도 소리였다. “slime, sludge, muck처럼 slop에는 만지고 싶지 않은 것의 축축한 소리가 담겨 있다”는 것.

2.3. 2022년 — 4chan에서 시작됐다는데

영문 위키백과는 초기 용례를 “2022년 AI 이미지 생성기 출시에 대한 반응으로 보이며, 4chan·해커뉴스·유튜브 댓글에서 내부자 은어 형태로 쓰였다”고 적는다. 손가락 여섯 개, 녹아내리는 얼굴 같은 초기 생성물을 조롱하는 말이었다.

경쟁 표현도 있었다. “AI pollution”, “AI garbage”, “AI-generated dross”. 다 죽고 slop만 살아남았다. 아무래도 발음이 이긴 것 같다.

다만 정확한 최초 게시물은 오리무중이다. 2024년 5월 해커뉴스 스레드에서 여러 명이 “4chan에서 최소 반년 전부터 썼다”, “아카이브가 2022년까지 올라간다”고 증언했지만 스레드 번호도 날짜도 특정되지 않았다. 애초에 4chan은 로그가 남는 곳이 아니다.

Théâtre D'opéra Spatial
2022년 콜로라도 주 박람회 미술전에서 1등을 먹은 미드저니 생성작 「Théâtre D’opéra Spatial」. 슬롭이라는 말이 막 태동하던 바로 그 시기의 사건이다.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2.4. 2024년 5월 7일, 그리고 8일

커뮤니티 은어가 공론장으로 튀어나온 이틀.

5월 7일, X 유저 @deepfates가 글 하나를 올린다. 맨 위에 인용한 그 문장이다. “스팸이 그랬듯 슬롭도 사전에 오를 것”이라는 예언.

5월 8일, 영국 개발자 사이먼 윌리슨이 이걸 보고 자기 블로그에 “Slop is the new name for unwanted AI-generated content”를 쓴다. 같은 날 해커뉴스에 올라 92점을 먹고 퍼진다.

이 글에서 윌리슨이 든 대표 사례가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여행 가이드가 오타와 푸드뱅크를 관광 명소로 추천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빈속으로 가지 마세요”라는 안내까지 붙어 있었다.

하루 뒤인 5월 9일, 윌리슨은 스팸과 슬롭의 교집합—AI로 만든 스팸—을 부르는 말로 “slom”을 제안하는 업데이트를 덧붙였다. 이건 아무도 안 썼다.[3]

중요한 건 윌리슨이 이 말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이 여러 번 밝혔고 영문 위키백과도 “그가 밀기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쓰이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적는다. 즉 조어자가 아니라 전파자다.

2.5. 그래서 뭐가 슬롭인데

가장 자주 틀리는 대목. “AI로 만들었으면 다 슬롭”이 아니다.

윌리슨이 제시한 기준은 딱 두 개다.

  1. 사람이 검토했는가
  2. 받는 사람이 요청했는가

하나라도 “아니오”면 슬롭. 원문 표현으로는 “mindlessly generated and thrust upon someone who didn’t ask for it”, 생각 없이 생성돼서 요청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들이밀어진 것.

나는 온갖 목적으로 LLM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지만, 슬롭을 만드는 데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발행하는 것에는 내 이름을 걸고 내 신뢰를 건다.

사이먼 윌리슨

맥쿼리 사전이 정의에 아예 “and not requested by the user”를 못박아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에서도 비건뉴스가 “AI 슬롭을 가르는 기준은 제작 도구보다 사람의 검증과 독창성,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정보가 담겼는지에 있다”고 정리했다.

3. 사고 친 사례들

3.1. 윌리 초콜릿 체험전 (2024.2, 글래스고)

슬롭이 현실에서 사고를 친 첫 국제적 사례이자, 이 계보의 전설.

House of Illuminati라는 회사가 AI로 뽑은 화려한 홍보 이미지를 페이스북 광고로 돌렸다. 참가비는 1인당 최대 £35. 막상 가보니 글래스고 화이트인치 산업지구의 거의 빈 창고에 풍선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압권은 대본에 있던 “The Unknown”이라는 캐릭터다. 설정은 “벽 속에 사는 사악한 초콜릿 제조자”. 16세 배우가 은색 가면에 검은 망토를 쓰고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 대본상으로는 로봇 청소기로 물리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소품이 없었다.[4]

행사는 개장 몇 시간 만에 취소. 배우 폴 코넬은 취소 후 현장에 돌아왔을 때 “경찰 밴 두 대와 순찰차 두 대”가 서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최 측은 850명에게 환불을 제안했고 출연진은 급여의 절반만 받았다.

이후 이 사건은 완전히 밈이 됐다. 채널5 다큐멘터리가 나왔고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패러디 뮤지컬로도 올라갔다. 다만 정작 어떤 AI 도구를 썼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롤링스톤이 “ChatGPT 같은 걸로 쓴 것 같다”고 추정했을 뿐이다.

3.2. 없는 퍼레이드에 모인 더블린 사람들 (2024.10.31)

파키스탄에서 운영되는 myspirithalloween.com에 존재하지 않는 더블린 핼러윈 퍼레이드 정보가 올라왔고, 오코넬 스트리트에 사람들이 몰렸다. 경찰이 “예정된 퍼레이드가 없으니 안전하게 해산해달라”는 성명을 냈다.

재밌는 건 이 사건의 진상 자체가 출처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모인 인원도 BBC는 “수백 명”, 다른 외신은 “수천 명”으로 제각각이다. 공식 추정치는 없다. AI 슬롭 사건의 진상이 슬롭처럼 흐릿한 셈.

3.3.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2024.10)

허리케인 헬레네 때 배 위에서 강아지를 안고 우는 소녀 사진이 퍼졌다. 팔다리가 뒤틀려 있어 누가 봐도 AI였다. 유타주 상원의원 마이크 리는 공유했다가 커뮤니티 노트가 붙자 조용히 지웠다.

지우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조지아주 공화당 전국위원 에이미 크리머의 말이 이 현상의 본질이다.

이 사진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솔직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에이미 크리머 — NPR

여기서 나온 파생어가 슬로파간다(slopaganda)다.

3.4. 다람쥐 한 컷에 200번 (2024.11)

코카콜라가 1995년 크리스마스 광고 “Holidays Are Coming”을 AI로 리메이크했다. 스튜디오 세 곳이 붙고 Leonardo·Luma·Runway·Kling 모델이 동원됐다.

『그래비티 폴즈』 제작자 알렉스 허시는 코카콜라의 빨간색이 “실직한 아티스트들의 피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런데 진짜 웃긴 건 효율성 주장마저 무너졌다는 것이다. 다람쥐가 나오는 컷 하나 건지는 데 약 200회의 생성 시도가 필요했다고 알려졌다. 사람이 그리는 게 빨랐을 수도 있다.

코카콜라는 “인간의 창의성과 기술의 균형”이라고 방어했고, 2025년에도 그냥 계속 만들었다.

3.5. 존재하지 않는 책 10권 (2025.5.20)

시카고 선타임스가 실은 여름 추천도서 15권 중 10권이 실존하지 않는 책이었다. 유명 작가 이름에 그럴듯한 제목을 붙인 완전 창작물이었다. 같은 콘텐츠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일부 판에도 실렸다.

전적으로 제 큰 실수이며 선타임스와는 무관합니다. 그들은 구매한 콘텐츠가 정확하다고 신뢰했고, 저는 그 신뢰를 배신했습니다.

프리랜서 마르코 부스칼리아 — NPR

3.6. curl이 버그바운티를 닫았다

슬롭이 인터넷 인프라를 실제로 마비시킨 사례. 전 세계 거의 모든 기기에 들어 있는 curl 얘기다.

창시자 다니엘 스텐베리는 2025년 7월 시점에 전체 취약점 제보의 약 20%가 AI 슬롭이고 유효 제보 비율은 5%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보안팀 7명이 건당 30분에서 3시간씩 잡아먹혔다. AI로 그럴듯하게 쓴 가짜 보고서는 읽어보기 전엔 진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26년 초에는 16시간 동안 7건이 몰렸고, 그해 제출된 20건이 전부 무효였다. 결국 2026년 1월 31일자로 버그바운티를 종료했다.

바운티를 닫는 주된 목적은 사람들이 쓰레기 같고 제대로 조사되지도 않은 보고서를 보낼 유인을 없애는 것이다.

다니엘 스텐베리

본인 표현으로는 “AI 슬롭이 오픈소스를 디도스하고 있다.”

3.7. 그 외

4. 한국이 세계 1위다

이 글에서 한국 독자가 가장 놀랄 대목.

영상 편집 서비스 Kapwing이 2025년 11월 낸 「AI Slop Report」에 따르면 AI 슬롭 조회수 세계 1위는 한국이다.

순위국가조회수
1한국84.5억 회
2파키스탄53.4억 회
3미국33.9억 회
4스페인25.2억 회

인구를 생각하면 2위 파키스탄, 3위 미국을 압도적으로 제친 셈이다. 같은 조사에서 신규 계정의 유튜브 Shorts 피드 중 21~33%가 AI 슬롭이거나 브레인롯이었다.

코리아헤럴드가 집계한 국내 채널들.

뉴시스는 2026년 1월 이 상황을 “한국 유튜브, AI 쓰레기통 되나”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국내 표기는 아직 안 정해졌다. 경향신문·PD저널은 “슬롭”, 뉴시스·코리아헤럴드는 “AI 슬롭”, AI타임스는 아예 제목에 “AI 쓰레기”라고 박았다. 나무위키는 “별도의 순우리말 번역은 일반화되지 않았다”고 정리한다. 국내 보도가 본격화된 건 2025년 12월 메리엄-웹스터 발표 직후이고, 그 이전 국내 용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5. “75%가 AI”라는 통계의 진실

기사에 자주 나오는 “신규 웹 콘텐츠의 75%가 AI”라는 수치. 원출처는 SEO 도구 업체 Ahrefs의 자체 연구다. 2025년 4월 신규 영어 웹페이지 90만 개를 자체 탐지기로 돌렸다.

결과를 뜯어보면 이렇다.

즉 정확한 해석은 “AI가 조금이라도 손댄 페이지가 74%”이지 “AI가 쓴 글이 75%”가 아니다. 순수 AI는 2.5%뿐이다. 맞춤법 검사에 AI 쓴 것도 여기 들어간다.

독립 검증격인 Graphite 연구(2025.10)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2024년 11월에 AI 생성 기사가 인간 작성 기사를 추월했다고 결론 내렸다. 단, 여기 결정적인 단서가 붙는다. 그 기사들은 “구글과 ChatGPT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양은 많은데 아무도 안 본다는 뜻이다.

유튜브 쪽은 더 구체적이다. 뉴욕타임스가 2026년 2월 신규 계정으로 인기 아동 채널을 보고 Shorts 추천 1,000개 이상을 관찰했더니, 15분 시청 세션의 40% 이상이 AI 생성 비주얼이었다. 2026년 4월에는 128개 단체, 200명 이상 전문가가 서명한 공개서한이 유튜브에 전달됐다. 서한이 인용한 수치 중 하나가 인상적이다. 성인의 AI 판별 정확도는 사실상 동전 던지기 수준이고, 언어학 전문가도 62%를 틀렸다.

6. 비슷한 말들과의 차이

7. 반론

미술 큐레이터 프란체스코 디사는 이렇게 받아쳤다. “인간 생산물의 대다수도 언제나 슬롭이었다.” 우리가 아는 예술 캐논은 잊히거나 베낀 것들로 이뤄진 거대한 빙산의 살아남은 꼭대기일 뿐이라는 것.

학계도 붙었다. 앨런튜링연구소·시카고대·듀크대 등 연구진이 낸 「Why Slop Matters」는 슬롭을 그냥 ‘디지털 오염’으로 일축하는 태도 자체를 문제 삼는다.

AI 슬롭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은 문화적·경제적 수요의 문제에 대한 공급 측 해법이다. 집합적으로 사람들은 인간이 공급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콘텐츠를 원한다는 문제 말이다.

이 논문이 제시한 슬롭의 세 가지 속성이 꽤 정확하다.

  1. 표면적 유능함 — AI 없이는 진짜 실력이 필요했을 수준으로 보이지만, 그 아래에 실질이 없다
  2. 비대칭적 노력 — 손쉬운 프롬프트로 나오며, 원래 들었을 노력이 거의 안 든다
  3. 대량 생산 가능성 — 애초에 대중에게 도달하도록 설계된다

업계 반발도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가 2025년 12월 ‘AI slop’이라는 표현이 부당하다며 AI는 “마음을 위한 자전거”라고 썼다. 결과는 역효과였다. 레딧에서 수천 명이 설교조라며 조롱했고 오히려 용어 사용이 늘었다.[6]

8. 기타

9. 각주

10.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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